문화유산 답사기_문화재청 당선작

[스크랩] 불곡 푸른 대숲속엔 인자한 할매부처의 미소가 흘러.... -경주 남산 불곡&탑곡 답사-

세네라미 2006. 12. 21. 18:29
 

 경주의 아침. 상쾌한 남천변길을 달려 '할매부처'의 품속으로 안겨든다.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소개되었던 그 인자한 부처님, 바로 ‘불곡 석불좌상’이라는 무지 딱딱한 이름이 붙은 할매부처이다. 바위를 안으로 파들어 한결 더 인자함이 돋보이고 오랜 세월 풍파에도 견디어내었다.

 <사진설명: 불곡 석불좌상> 남산 동쪽 기슭 한 바위에 0.9m나 파내어 감실을 만든 후 조각한 여래좌상이다. 경주에서는 "할매부처"로 불린다. 머리 부분은 깊은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고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귀 부분까지 덮여 있다. 얼굴은 약간 숙여져 있으며, 둥글둥글하게 조각하고 눈은 은행알처럼 두툼하게 나타내었다. 어깨는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고 옷은 향 어깨에 걸친 통견으로 하였다. 손은 옷 속에 넣어 표현되지 않았고, 옷이 수직으로 흘러내려 사각형 대좌를 덮고 있다. 오른발만을 밖으로 드러내어 부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대좌를 덮은 옷은 아랫단이 장막을 만들어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불상은 장창골 애기부처와 배리 삼존불과 함께 신라 석불로는 아주 이른 시기인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그 인자함이 참으로 할머니의 인상 그대로를 닮았다. 친할머니보다도 외할머니의 인상이 부처님에서 묻어나온다. 할매에 반한 일본인 유학생이 여기서 하루를 유했다고 했던가! 참으로 그리해도 포근히 감싸줄 만큼 인정이 뚝뚝 떨어진다. 어떻게 저런 다정함과 인자함을 돌에 나타낼 수가 있을까!


 불곡의 할매부처의 인자함을 가슴에 담고 탑곡으로 향한다. 탑곡의 초입부터가 심상치 않은 색기를 품어내고 있다. 노릇, 불긋...모퉁이를 돌아서 탑곡 안쪽은 그야말로 단풍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문화기행의 별미일까?! 유난히 단풍이 초라하다던 올해인데도 탑곡 안은 그야말로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단풍길을 따라 가을로(가을路) 안쪽에 자그마한 사찰이 위치하고 있으나 사찰이라기보다는 대처절과 같은 분위기의 작은 암자와도 같다. 오가는 불자도 눈에 띄지 않고 다만 공양쌀을 올리는 불심깊은 여보살의 발걸음만 있을뿐...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의 융단길을 따라 걷노라니 저 안쪽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바위보다는 녹색으로 칠해진 철담이 이곳에 유적이 있음을 알려주었지만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과연 바위 전체가 불세계, 그 자체로 현현해 있는 게 아닌가!


 여래, 비천상, 승려, 보살, 인왕, 능수버들, 대나무, 사자 등 30여점의 불세계를 표현한 그림들이 새겨져있었다. 그 형태도 새롭고도 신기한 모습들로 여타 다른 곳과는 다른 모습들이다. 초기 불교 전래당시의 모습을 반영한 듯 그 모습들이 서역의 그것을 닮은 듯 보였다.

 <사진설명: 탑곡 마애조상군>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남쪽에 3층석탑이 있어 탑곡이라 부른다. 그리고 마애조상군이라는 명칭은 높이 약 10m 사방둘레 약 30m의 바위와 주변의 바위면에 여러 상이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 면에는 마주 선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게 석가여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탑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동쪽 면에는 가운데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고, 주위에는 비천상,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 나무 등이 새겨져 있다. 남쪽 면에는 삼존불이 정답게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여래상과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서쪽 면에는 능수버들과 대나무 사이에 여래조상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상이 한자리에 새겨진 예는 보기 드문 일이며,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총 34점의 도상이 확인되고 있다.


 바위를 따라 뒷편으로 오르니 바위 뒷쪽 역시 불상을 새긴 모습들이 나타난다. 전면 바위에 긴장스럽게 새겨진 모습과는 달리 아늑한 분위기에 맞게 안정적이고도 포근한 인상으로 또 다른 서방정토를 구현하고 있었다.

 일행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 돌(?)보다 아름다움을 새삼 느껴보면서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는 순간, 잘 생긴 석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조성 시대가 후대인 듯 하지만 단정하고도 긴장미를 풍기는 3층 석탑이 조성되어 있다. 저 아래쪽에서 누군가 탑을 돌던 모습이 살짝 보였었는데 바로 그 탑인가 보다. 그 소원이 명년 봄에는 꼭 이루어졌으면 한다.


 탑곡을 되돌아 나오는 길.

 담장넘어 슬쩍 넘겨다 본 그곳에 금가루가 뿌려져있는 착각을 일으키고 말 정도의 아름다운 별세계가 펼쳐져 있어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떨어져 스러져가는 그 순간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줄 아는 자연이 그리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과연 내가 떠나는 그 순간에도 저리 고울 수가 있을까? 한평생 욕심으로만 점철되다가 후회만 관속 가득히 담아가지는 않을까? 내가 묻히고 담길 반평도 안될 관속에 과연 나는 무엇을 담아갈 것인가.


 자꾸만 붙잡아 끄는 탑곡의 단풍귀신과 어서 오라고 부르는 앞서간 마음급한 일행들 사이에 아쉬움만 가득히 길바닥에 뿌리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터벅거린다. 이제 가을의 황홀함은 가슴에 담아두고 보리사로 향한다. 남천가에 키 작은 갈대들 사이로 하얀 철새들이 오르르 모여 이른 아침의 답사객을 반갑게 재잘거린다. 저들도 하얀 눈과 함께 또다른 세상으로 향하겠지......


 남천가를 달려 당도한 곳은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넉넉히 앉아계신 ‘미륵곡 석불좌상’이다. 주차장에서 보리사터로 향하는 길바닥의 돌놓임이 예사롭지 않다. 무심히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이 아닌 각진 돌들을 다양하게 배치해서 정연하면서도 미적 감각을 드러낸 것이 보는 이를 흐믓하게 만든다. 이 정도 감각을 길바닥에 나타낼 정도로 절을 관리하는 승이 있는 곳이라면 모시는 부처님도 범상치는 않을 듯하다.

 <사진설명: 미륵곡 석불좌상> 이 불상은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에 신라시대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석불좌상이다.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대작이며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다. 연꽃팔각대좌 위에 앉아 있는 이 불상은 석가여래좌상이다. 반쯤 감은 눈으로 이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이라든가 풍만한 얼굴의 표정이 자비로우면서도 거룩하게 보인다. 별도로 마련된 광배에는 연꽃띠 바탕 사이사이에 작은 불상을, 그 옆에 불꽃 무늬를 새겼다. 손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다. 특히 배 모양의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좌상이 선각되어 있는데 약그릇을 들고 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미처 부처님 앞에 다가서기도 전에 흘낏 바라본 모습만으로도 대번에 얼굴이 환해진다. 어쩜 저리도 잘 생겼을까? 장동건과 원빈을 합쳐논대도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참 잘생긴 얼굴에 기품까지 은은히 흐른다. 부처님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광배에 까지 섬세하게 새겨진 소불의 모습들도 이채롭기 그지없다. 이 시대 어느 성형외과 의사가 저토록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다시 되돌아나오는 남천의 하늘에서는 올 때 보았던 하얀 철새들이 유유히 비상하고 있었다. 잘 가라는 인사일까? 보내기가 아쉬운 날개짓일까?


 이제 경주에서 보기로 예정되어 있는 마지막 문화재인 ‘남산리 삼층석탑’으로 향하는 일행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남천가를 지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 지었다는 화랑교육원 앞을 지나간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가도 비슷한 건물의 느낌이 나서 인솔자에게 물었더니 아직도 화랑교육원 자리란다. 지었을 당시야 화랑을 어쩌고 저쩌고 하는 취지에서 지었겠지만 그 건물들이나 넓이가 무슨 군부대 연병장 같은 딱딱함이 묻어나는 것이 어디에서도 호연지기의 활달한 기상을 펼치던 화랑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투덜대면서 도착한 ‘남산리 삼층석탑’. 언뜻 봐서는 똑같이 생긴 두 탑이 서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탑기단 부분의 조성방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탑의 기단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동탑으로 일컬어지는 왼쪽탑은 바른 벽돌을 잘 쌓아 만든 모전석탑의 형태로 반듯한 돌을 약간 엇갈려 쌓은 형태로 마감하였고, 서탑인 오른쪽 탑은 기단의 몸체에 팔부중상을 아름답게 새겨놓아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평지에 덩그랗게 놓여있어서인지 별다른 특별한 감흥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주변 은행잎들이 노랗게 떨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금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하다. 그 광경을 놓칠세라 포즈를 취하는 일행의 모습이 그리 천진해 보일 수가 없다.

 여행은 이렇게 사람을 들뜨고 순수하게 만드는 영혼의 정화수와도 같은 것인데 시간의 핑게, 우선순위의 핑게, 금전의 핑게로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제 남산리 탑을 마지막으로 감포로 떠난다. 일행의 눈가에 피로가 가득하지만 그들의 발걸음만은 가벼워 보인다. 여행의 작은 흥분이겠지......

 감포로 향하는 길 중에서 석굴암을 지나 넘어가는 길로 향한다. 시내쪽을 통과하는 길보다야 이 길이 가을에는 훨씬 어울린다. 산 굽이 굽이 넘어가는 길이 빠름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맘에 들지 않을지 모르나 천천히 가을을 느끼며 넘어가는 이 길이야말로 경주 여행의 마지막을 추억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이 아닐까 싶다.

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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