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_문화재청 당선작

[스크랩] 해인지구 답사를 다녀와서

세네라미 2006. 12. 21. 18:27

해인지구 답사를 다녀와서

 

 여행은 언제나 설레임이다. 설레임에는 기대와 긴장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세상사에 신경거스름이 무뎌진다.

 올해 들어서 중원미륵지구에 이어 2번째 답사를10월20일~~22일 2박 3일로 해인지구로 잡았다. 동행하시는 분의 필요한 자료가 환적당 부도였기에 해인사 및 대구 용연사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답사계획으로 잡았다. 먼저 10월 19일일 동지 끼리 모여 답사 일정과  답사목록등을 미리준비한 사전정보로 교환하면서 우리는 생맥주로 전야제를 하였다.

언제나 아이들과 같이한 가족여행같은 답사 였으나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중학생 이상으로 자라다보니  어른뿐임이 언제나 애석한 마음이다.

우리는 답사시  운전, 길안내와 설명, 회계와 메모, 사진등으로 책임이 나눠진다.

누구하나 소임에 미천함이 없기 환상의 답사팀이라 서로 칭찬함이기에 언제나 새로움이고 道伴하는  즐거움이다.

10월 20일 18:01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우리는 중앙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춘천을 출발하였다. 개인적으로 해인사를 몇번 방문했었지만 2004년에 해인성보 박물관에서 본 완당 김정희의 상량문을 보았을때의 금빛 찬란한 감동과 화사한 꽃무늬 가사를 걸친 희랑조사의 모습의 기괴함이 언제나 새록함이다.

 

홍류동계곡의 늘어진 가로수들은  밤의 어둠속에서 숲의 우거짐이 더 검은 색깔을 토해내고 있기에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별이 더 반짝인다. 일주문을 지나 해인초교 앞 소박한 88여관에 숙소를 정했다. 88이란 숫자는  우리나라가 올림픽으로 업그레이드 되던해이고  내가 꽉찬 20대 후반으로  결혼하던 해이기에  더 정감이 갔다.

다음날  해인식당을 가니 2년전 해인사를 방문했을때 강원도에서 군대생활을 했다던 주인아저씨가  아직 계셨고 더 챙겨주시는 나물반찬에 우리는 고향까마귀의 반가움을 맛난 아침으로 대접 받았다.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백련암을 방문하여 환적당 스님의 진영을 확인하려고 하였으나 주지스님께서 는 도난 당하였기에 진영을 찍어논 사진만 보여 주셨다.

0. 백련암 요사채 "환적당스님의 진영사진

 

  

 

 

 동행한 분의 말씀으로 성철스님이 계실때 도난 당하였다가 다시 찾아 온걸로 알고 있다고 했는데 정보가 정확치 않았나 보다.

백련암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씀하신 성철스님이 계셨던 곳으로 성철스님을 모신 "古心院"의 금빛 주련으로 있는 "임종게"가 눈길을 끌었다.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이 끝이

                                               없을지라도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둥근해  붉은 빛으로 푸른 산에 걸렸도다

0. "고심원"의 주련

 

백련암을 나와서 희랑대를 들렸다 희랑조사가 계셨던곳으로 경치가 감탄할만하다. 독성님(나반존자)의 기도가 영험한곳이라서인지 보살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곳이란다. 백련암을 몇번 왔었지만 처음 희랑대를 대하고 보니 그 느낌에 인생사의 한부분을 보는것 같음에 석연함이다. 좋은것을 지척에 두고도 보지도 알지못하는것이 얼마나 많은가

희랑대를 지나 지족암에 들렸다. 지족암은 소신공양을 하셨던 일타스님을 모신곳으로 희랑대 못지 않은 전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괴하게 쓰여진" 大夢覺殿"이라고 쓰인 현판을 가지고  설왕설래 하였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족암의 뜻만 생각하여도 알아야할 "불족도"를 지척에 두고 그냥 왔으니 안타까움을 뒤로 하였다.

약수암 가까이에 있는  5구의 부도를 확인하고 우리는 홍제암으로 향했다

가는도중 해인사 경내에는 여기저기 부도가 많이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아직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것 같기에 전문가의 관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느낌이었다.

홍제암에 들러 환적당과 예봉당스님의 부도를 확인하고  허균이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지었다는 사명대사석장비를 살펴본후에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한  사명당의 부도를 보았다.

덩그마니 홀로자리한 그 부도에는  그를 추모하는 한사람의 가을 꽃바구니가 놓여있기에 홀로있는 쓸쓸함을  씻기워 주고 있었다.

0. 사명당 부도

 

 

 

홍제암 옆에 자리한 원당암은 신라 진성여왕때 각각위홍의 원당사찰로 단아함과 정갈함이 묻어났다. 요사채 옆의 마당에 연꽃모양으로 만들어진 물을 버리는 곳하며, 특히 보광전의 연꽃무늬가 새겨진 기단석은 단아함과 화려한 신라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듯하였으며 자그마한 점판암으로된 다층탑인 청석탑은 석등의 크기대로, 육각형의 석등은 비록 화사석은 없지만 석탑과 어우러지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 내가 해인사에서 가장 보고싶은것은 "국사단"이다. 국사단은 여느 절에선 찾아볼수 없는곳으로  해인사가 들어서기 이전 대가야국의 건국설화로서 가야산신인 "정견모주"를 모신곳이며 지금도 영험한 곳이라고 한다.  그옆의 나무는 이정과 순응스님이 황후의 병을 낫게한  설화가 얽혀 있는 곳이라니 다시금 새로움이다.  수다라장의 고려대장경과 법보전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법보전의 비로자나불로 개금시 신라시대 불상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던 쌍동이 비로자나불이 생각이 났다. 2004년 해인사 방문시 법보전의 비로자나불을 보시며 적어도 고려 초기 이전의 불상으로 예사롭지 않다고 말씀하신 그분의 심미안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놀람이다.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느껴지는것이 본능일까? 그의 세심한 고찰과 심미안이 한없는 부러움이다.

 

내려오는길에 매화산의 청량사가 눈에 들어 왔지만 오늘 "영암사"까지 가야하는 시간의 촉박함으로 월광사지로 향했다. 2년전 찾아보았던 청량사의 단아한 3층탑과  화려한석등 그리고 일직선상으로 연결되는 탁트인 경치를 생각하면서~

월광사지에는 건장한 탑 두기가 남아 있었으며  탑옆에 쓰여진 글귀가 망국의 슬픔을 평생간직했을 월광태자를 생각나게 하였다

" 아득한 풍경소리 어느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 달빛 쌍탑위에 물이들어 모듬내 맑은 물줄기 새아침을 열었네"

 

애닯은 월광태자를 뒤로하고 우리는 황매산으로 빠르게 차를 몰았다. 저녁놀이 저만치서 밀려오기에 영암사지를  어둠에 뺏길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오기 때문이었다.

바위산으로 어우러진 황매산은 영암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으며 저녁 어둠이 어슴프레히 같이한 폐사지 영암사지는 나름대로 환상이었다.

무지개 돌계단위에 고즈넉히 서있는 석등은 그자체로도 충분히 빛을 발하는 석등이었으며  탄성이었다. 동행한 사람들과 준비한 자료로 법주사의쌍사자석등등 몇개의 사자 석등과 비교하여 보면서 예전엔 석등이 석탑앞쪽에 자리하지 않았나라는 의견이 나왔으나.  차후 관련자료를 찾아보기로 미루고서 금당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금당자리 기단석 및 소맷돌에 남아 있는 가장 사실적이고 갈기털이 빛나는  사자모습과  인간과 새의 모습을한 상상의 동물 가르비앙가를  살펴 보며 이러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시는 그시대의  석공과  선조들에게 감사해 했다.

어둠이 짙게 짙어오도록 영암사지에 머무르면서  현재 폐사지의 허허로움과  화려했던 과거를 상상하면서  확인하고 싶음에 설레였고  알고 싶었기 기대되었던 커다란 풍선같은 가슴을 무지개 빛으로 채워 나갔다.

0.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그러나 대구를 향하는 길목엔  "파라칸샤스"의 알알이 빨간열매가 늦가을의 쓸쓸함에서 문득 깨어날 정도로 화려함이기에 시야를 즐겁게 한다.

 

다음날 여정이 갓바위를 시작으로 하기에 경산부근에 숙소를 정했다. 갓바위는 대구시민의 모태라고 할만큼 대단하다니 요번엔 꼭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휴일이기에 이른 아침부터 산행을 했다. 팔공산자락의 관봉에 자리한 갓바위 부처님은 신라시대 조성되었으며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영험함으로 바로 밑에 있는 선본사에는 아침공양하는 사람들로 줄이 끝이 없다.

108배를 작정하고 갔으나 많은 사람으로 인하여 나를 위한 108배 자체가 집착인것같아서 조용히 삼배만 올리고 자리를 양보하였다. 관봉에서 내려다보는 대구 시내는  산에는 붉은단풍 위로 운무가 흐르고 있음으로  장관이었으며 땀흘리며 당신을 만나러오는 정성이 누구나이기  관봉에 갓바위 부처님은 그정성을 안받아 줄수가 없을것 같았다.

갓바위 부처님은 관을 쓰고 있기에 미륵불 같았으나 손에는 약사발을 가지고 있는 약사여래 였으며 근엄한 표정만큼은 압권이었다. 요즘들어 갓바위부처가자리한 그 위치가 점점 기울어져 간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관봉에서 내려와 환적당 부도를 보러 용연사로 향했다. 용연사는 우리나라 8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곳으로 마침 초하루였기 용연사 석조계단인 적멸보궁엔 신도들이 가득하였고  법회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보궁옆의 환적당스님 부도 외에 부도 7기를 확인하고서 다른곳에 자리한 부도를 찾아 나섰다. 신도 한분이  친절히 가르켜 주셨기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상주에 소재한 남장사를 들렀다. 늦은 가을비는 처연히 내리는데 우산을 받쳐들고 산사를 찾아가는 분위기가 내려앉는 가슴속 저밑에 또하나의 뭉클거림이 있어 새로움이다.

남장사는 북장사의 반대편에소재한 사찰로 아기자기함과 정갈함이 곳곳에 배어있는 비구니 사찰임이 절로 묻어나는 곳이다.

극락전및 후불목각탱이 보수공사중이어서  분위기만 파악하고 국사전에 가서 고승들의 진영을 보았다. 이 진영도 도난으로인하여 새로 복원하였다니 환적당스님의 모습에서 분냄새가 나는듯 했다.

상주는 삼백 (곶감,누에, 쌀)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곶감을 만들려고 집집마다  줄줄이 매달아놓은 주홍빛 감이 시야를 즐겁게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나는 단감을 사서 먹음이 답사의 즐거움을 더했다.

뒷풀이를 하며 이번 답사중 백미를 이야기 하다보니 당연 "영암사지"와 "희랑대"란다.

이번여행에서 영암사지의 석등과 석탑 그리고 무지개 돌계단은 그자체로 곡선의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아름다움이었으며 금당 지단석의 리얼한 사자모습과 소맷돌의 가르비앙가의 모습은 그시대를 생각할 수있게 상상 나래 펼쳐 주었고 비새는 요사채의 지붕에 얺혀진 돌에선  폐사지로서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 하였다.

그리고 그분께 감사드린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에 문화재에 대한 어려운 부분을 서정적인 글로 표현하여 주심으로  문화재에 더 가깝게 다가서게 하심을 ~~~

 

 

 

 

 

 

 

 

 

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글쓴이 : july_wom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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