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_문화재청 당선작

[스크랩] [문화유산답사기]옛 터를 생각하며 돌아본다는 것

세네라미 2006. 12. 21. 18:29

옛 터를 생각하며 돌아본다는 것

 - 적오산성을 돌아보며


  “옛.생.돌”이라는 모임은 옛 터를 생각하며 돌아보는 모임이다. 그들에겐 모임이라면 갖추게 되는 회칙도 없고, 회비마저도 없다. 그저 한 달에 한두 번 대전에 산성이며, 사라져가는 것을 찾아 그것들을 기록하고 소복소복 기억을 나누고 있을 뿐이다. 어떤 힘이 그들로 하여금 20년 동안 한결같이 산길을 걷게 하는 것일까?

  지난 토요일 그들의 답사에 함께 하게 되었다. 아침 9시, 대관령에서는 눈이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대전 엑스포 남문광장에서는 커피향기를 나누며 몇 사람이 두런거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남문광장은 답사를 떠나는 사람들의 출발지가 되어 버렸다. 넓은 주차장과 편리한 접근성 때문이겠지만, 광장이 드디어 사람을 모으는 힘이 생긴듯하여 홀로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여기저기서 눈발처럼 모여든 사람들은 서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목적지인 적오산성으로 이동하였다.

  사실 대전에는 40여개의 성과 보루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대전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성(城)돌이 돌계단이 되어버렸고, 때로 쉬어가는 의자가 되어버린 형편이니 누구에게 하소연 하겠는가? 여하튼 대전은 산성의 도시인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산성이 있는 것일까?

  대전은 삼국 중 백제에 속했던 지역이었다. 위례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백제는 대전의 오른쪽 어깨인 계족산 너머로 신라와 마주하게 된다. 변방이었던 대전은 신라를 견제하고 백제를 지켜내야 할 땅이었던 것이다. 백제는 동성왕 무렵 대전의 산줄기를 따라 40여개의 성과 보루를 쌓게 된다.

  옛.생.돌 사람들은 허물어져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 산성들을 몇 차례씩 오르내리면서 둘레를 실측하고 도면을 그리며 옛 터와 만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왜 그들은 지상에 수많은 문화재를 제쳐두고 유독 산성에 올라 의미를 찾고자 했던 것일까? 또 하나의 궁금함이 더해진 채 그들의 오래된 추억을 건네받으며 적오산성을 오른다.


  자라와 말의 전설을 감추고 있는 산성


  적오산성은 대전 유성구 덕진동 북대전나들목 부근에 위치한 적오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255m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하여 등고선을 따라 성이 축조되어 있는데, 큰 자라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한 형국이어서 적오산(赤鰲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적오산성은 또한 덕진산성(德津山城)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의 덕진동이 백제시대에는 소비포현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적오현, 고려시대에는 공주목 회덕군의 덕진현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자력연구소 못 미쳐 아주미술관 앞에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적오산성을 세 번째 찾아가는 길이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전의 산성이 허다한데, 어찌된 인연인지 적오산성만은 세 번씩이나 오르게 된 것이다. 게다가 눈이 펄펄 날리는 적오산성을 처음 만난 이후로 나의 산성 사랑도 시작되었으니 만날 때마다 첫 눈의 그리움처럼 가슴이 설레게 된다.

  늦가을의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걸음을 옮긴다. 적오산 초입에 적오산성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지난겨울처럼 여전히 앞뒤가 뒤집힌 채 서 있는데, 언뜻 보면 대전광역시 표지석이 하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뒤를 살펴보아야 비로소 대전광역시의 기념물 제13호 적오산성 표지석임을 알 수 있으니 그 무심함도 어지간하다. 우리는 아직도 대전광역시가 적오산성의 것이니 대전의 제일 부자는 적오산성임이 분명하다며 헛헛한 웃음을 나누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편안한 길이다. 이미 입주하기 시작한 테크노벨리 아파트 단지를 좌측으로 두고, 원자력연구소의 커다란 태극기를 우측으로 바라보며 산길을 오르게 된다.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어서인지 숨이 가빠올 지점마다 쉼터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새 지난겨울보다 더 다듬어진 느낌이었다. 산 중턱쯤 오르다 보면 방송국의 송신탑을 만나게 되는데, 그 즈음에서 물도 한 모금 마시며 올라온 길을 바라보면 좋을 일이다. 산을 오르는 일은 바쁜 일상에 쫓기다가 호젓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적오산성은 전체적으로 마름모꼴 평면을 이루고 있다. 730m 정도의 성벽은 거의 붕괴되었으나 동북쪽 약 10m 구간이 온전히 남아 있어 그나마 백제시대 성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산성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동쪽을 통해 산의 정상부에 위치한 장대지에 도착하였다. 장대지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계족산성이 바라다보였다. 대전의 산성 중 절반을 오르고 나니 이제야 망원경이 없어도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산성을 가늠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번에 계족산성을 오르게 되면 과연 이곳 적오산성을 한 눈에 찾아낼 수 있을지...

  성 둘레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며 성벽을 걷기 시작한다. 몇 걸음 옮기면 바로 산성 내 말바위와 만나게 되는데, 말바위에는 그 이름에 걸 맞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옛날에 적오산 꼭대기에는 무쇠로 만들어진 말이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 무쇠로 만들어진 말의 머리를 덕진마을 쪽으로 놓으면 호랑이가 덕진마을의 개를 물어가고 반대로 그 말의 머리를 방현마을 쪽으로 돌려놓으면 호랑이가 방현마을의 개를 물어갔다는 것이다. 지금은 무쇠로 만들었던 말은 없어졌고, 그 말이 세워져 있었던 바위만이 남아 말바위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호랑이도 이 곳 적오산의 한 자락을 호령하고 있었던 것일까?

  또한 이 말바위에는 어느 이름 모를 옛사람의 시가 한 수 새겨져 있기도 하다.


  赤鰲隨溪 芳里春風(적오수계 방리춘풍)

  靑柳連城 係馬於枝(청류연성 계마어지)


  적오산 물길 따라 / 방현마을에 봄바람이 불어오네. / 푸른 버드나무는 성을 따라 늘어서 있는데 / 준마는 나무에 매어있구나.

  우리 답사일행은 한참을 말바위 앞에 쪼그려 앉아서 싯구를 읊조렸다. 마치 그곳에 보물이라도 숨겨 있는 듯, 청마라도 한 필 매어 있는 듯 말이다.

 

 

            <말바위에 새겨진 명문>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요?>

 

 


  말바위가 위치해 있는 조금 높은 둔덕에서 아래로 내려서면 비교적 온전히 그 모습이 남아있는 산성의 동북벽을 만나게 된다. 지난겨울 눈길을 헤치고 만났던 동북벽은 낙엽을 바닥에 두른 채 여전히 당당하게 산을 호위하고 있었다. 모두들 옛 사람의 단단한 솜씨를 만나는 경이로움에 빠져 경사진 비탈에 매달려 있는 아슬아슬함도 잊은 채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비탈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문득 그 광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착시현상일까?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양 보이는 것이었다. 나무가 비탈에 서 있고, 산성이 오랜 세월 우뚝 서 있는 것만큼 당연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늦가을, 적오산성 동북벽>

 

  적오산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1개씩의 문터가 남아 있는데, S자형의 북문지가 비교적 그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북문지에서 방향을 틀어 서벽을 따라 가다보면 꽤 넓은 건물지에 돌로 만든 우물이 남아 있다. 우리는 서문지 부근 높은 위치에 서서 같은 위도 상에 놓이는 대전의 또 다른 산성 안산동산성을 조망한 후 남문지를 거쳐 처음 출발했던 동쪽 장대지로 돌아왔다. 일행들은 대부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벽의 상태를 살피며 꼼꼼하게 수첩에 적고 있었다. 한결같은 진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첫 눈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산성이여!


  대전의 산성은 대부분 산의 정상에 방어를 목적으로 축조한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드시 지켜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산성의 존재이유였으리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성돌을 날랐을 것이고, 칼바람에 맞서 성벽을 쌓고 또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형이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은 불과 몇 개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허물어지거나 해체되어서 다시 새것처럼 쌓여지고 있는 것이다. 반듯하게 쌓아 올린 오늘날의 새 산성에 우리가 감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세월을 건너온 숨결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숨 쉬게 하는 것, 그러해야만 감동도 설 자리가 있을 것이다.

  다시 옛.생.돌 답사를 생각해본다. 그날 옛.생.돌의 답사는 적오산성을 내려와서 다시 유성구 신동에 위치한 소문산성을 찾아갔다. 그들은 끊임없이 산성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때로 우거진 잡목을 헤치고, 새로 난 길을 피해 옛 오솔길을 찾아 헤매기도 하며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기록하고 있었다.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산을 좋아하던 내 오래된 친구는 왜 그리 산을 오르느냐 물으면 그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옛생돌 사람들 역시 산성이 있으니 찾아가는 것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얼마나 더 산성을 만나야 그 모든 물음에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첫 눈 오는 날 만나고 싶은 그리운 이여, 그대는 대전의 산성이다.

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글쓴이 : 나무3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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