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_문화재청 당선작

[스크랩] [문화유산 답사기] 가을, 한적함을 찾아서. - 신원사(新元寺)

세네라미 2006. 12. 21. 18:23

 

가을, 한적함을 찾아서. - 신원사(新元寺)


가을, 신원사

지난여름 7박 8일 동안의 전라북도 답사 이후, 그 추억을 그리워하며 틈틈이 우리 문화재를 찾아다니고는 했었다. 11월 4일, 모처럼 1박 2일의 일정으로 지방 답사를 떠날 수 있었다. '한국문화표현단'의 일원으로서 떠난 이번 일정은 충남 공주 지역 일대 계룡산, 공산성, 무령왕릉, 마곡사 등을 돌아보는 순서였다. 이 글에서는 계룡산, 그 중에서도 신원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른 어떤 곳보다도 조용하고 고적한 분위기가 나는 장소라 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신원사란?

우선 신원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신원사는 계룡산 서남쪽에 있는 절로 동학사, 갑사,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구룡사와 함께 계룡산의 4대 고찰로 불린다. 조계종 제 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화상이란 고승이 창건하였고 여러 번의 중건과 임진왜란 때의 소실 등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중악단 등의 건물이 있다.

 

 


신원사로 가는 길

동학사를 둘러보고 신원사로 이동했다. 신원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단체로 관광 온 학생들이 막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의 시끌벅적, 그리고 고요함. 학생들이 떠난 자리는 시원한 가을바람만이 채워주고 있었다. 동학사에 들어갈 때 끊었던 국립공원 입장권을 매표소에 보여주고 신원사로 가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사찰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는 할머니들께서 자리를 잡고 앉아 구운밤이나 나물들을 팔고 계셨다. 그러나 흔히 사찰로 가는 길 곳곳에 있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점들, 그리고 그 음식점을 꽉 채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한적한 음식점 주변에 낙엽들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예전에 갔던 실상사처럼, 이 곳도 조용하면서도 시골 내음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였다. 내가 다녀봤던 사찰 중 으뜸가던 실상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기대에 부푼 채 낙엽 길을 한 발씩 한 발씩 밟아간다.


신원사의 마중 - 사천왕문, 사리탑, 대웅전, 독성각

다리를 지난 다음에 보인 것은 계단 위에 높이 자리 잡은 신원사 사천왕문이었다. 자연과 잘 어울리는 소박한 건물이지만 최근에 손을 봤는지 단청의 색이 오래된 느낌이 나지 않아 약간 어색한 면도 있었다. 높은 곳에 위치하다보니 사천왕문을 제외한 다른 사찰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빨리 사찰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계단을 훌쩍훌쩍 올라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자 문 너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친 아름다운 모습, 불국토로 들어가는 길로 더할 나위 없었다. 한달음에 들어가려다 문 옆에 고즈넉이 놓여 있는 의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엇인고 하니 예전 주지 스님께서 평소에 쓰시던 의자란다. '문화재 옆에 뜬금없이 웬 의자일까?' 라고 의아해했던 기분이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신원사 사천왕문. 조금이라도 빨리 경내로 들어가고 싶게 만든다. 왼쪽에는 예전 주지 스님께서 앉으셨다는 의자가 놓여져 있다.

 

길을 따라가면 커다란 5층 석탑과 대웅전이 보인다. 이 석탑은 1990년에 세워진 사리탑이라고 하는데 전체적인 비례를 잘 맞춰 아름답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대웅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석탑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 석탑이 대웅전을 지나치게 가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신원사의 다른 건물들 또한 작고 아담한 건물들인 것을 감안한다면, 석탑이 사찰의 전체적인 조화를 깨고 있다. 

 

 

 

신원사 대웅전 전경. 대웅전과 뒷산의 아늑한 조화가 아름답다. 석탑이 크기가 커서 대웅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대웅전 자체에서 특별히 기억해야 할 부분은 없다. 대웅전의 아름다움은 주변 배경과의 조화에서 나타난다. 방금 전의 사진을 다시 보자. 대웅전의 바로 뒤에는 나무들이 늘어 서 있고 먼 곳에는 계룡산의 산자락이 대웅전을 품고 있다. 자연과 하나 된 절묘한 광경이 아니겠는가? 내가 다녀 본 사찰 중에 건물과 배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으로 백양사의 쌍계루를 들 수 있다. 뒷산의 웅장한 모습이 쌍계루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에 비해 신원사 대웅전은 웅장함에 있어서는 떨어질지 모르나 산에 안겨 있는, 아늑한 맛이 있다. 두 곳 모두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백양사 쌍계루를 아버지의 품에 안긴 모습이라고, 신원사 대웅전을 어머니의 품에 안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웅전의 정면에는 범종각이, 좌우에는 영원전과 독성각이 배치되어 있다. 한쪽에는 스님들이 계시는 벽수선원이 있다. 일반적인 사찰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대웅전 앞마당은 일반적인 사찰에 비해 상당히 넓어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고 사찰의 전체적인 공간도 여유롭게 활용되고 있다. 산에 위치했음에도 꽤 넓은 평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 중 독성각이 있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독성각은 민간 신을 모시는 장소이다. 즉 사찰 내에 민간신앙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규모가 큰 사찰 뿐 아니라 규모가 작은 사찰에도 불교외적인 신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민간신앙이 불교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긴밀한 존재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고 영산(靈山)에서의 융합 - 중악단

영원전을 넘어 좀 걷다보니 한옥이 한 채 나왔다. 마치 서원 같은 분위기이다. 사찰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 유교 건축 양식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설명을 듣지도 않고 문을 넘어섰다. 첫 번째 공간이 나온다. 내부는 철저하게 좌우 대칭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유교 건축, 특히 서원 건축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내부의 절제되고 엄숙한 분위기에 한순간 기가 죽어 더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설명을 들었다. 설명에 따르면 이 곳은 ‘중악단’으로 계룡산의 산신을 모신 묘단이다. 1394년 태조 이성계가 ‘계룡단’으로 창건하여 산신을 제사지내다가 효종 때에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철거되었다. 1876년 명성황후의 후원으로 다시 재건되면서 ‘중악단’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의 ‘하악단’과 함께 3악(岳)으로 불렸다. 현존하는 것은 신원사의 ‘중악단’ 뿐이라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건물을 하나하나씩 살펴보았다. 외부에서 보니 상당히 웅장하고 격이 높은 건물이었다. 좌우보다 높게 지은 솟을대문으로 그 위용을, 높은 담으로 내부를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신원사 대웅전처럼 산을 배경으로 잘 어울리는 모양새를 갖췄다.

 

 

 

중악단의 모습. 유교 서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폐쇄적이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솟을대문을 지나 첫 번째 공간으로 들어가면 양쪽에 부엌과 온돌방이 있다. 중악단을 관리하는 사람이 묵는 숙소로 보인다. 두 번째 공간으로 가기 전에 중문을 지나게 되는데 중문에는 무인으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불교의 사천왕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공간에 들어서면 ‘중악단’이라고 크게 써진 현판과 함께 큰 건물을 보게 된다. 이 건물은 또 불교 건축물 같다. 몇 층으로 된 단청과 팔작지붕으로 된 기와선이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두 번째 공간 내에서는 독특한 요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선 지붕에 있는 동물 모양의 조각상들이었다. 이를 ‘잡상’이라 하는데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주로 궁궐 건축에서 쓰이는 양식이라고 한다. 또한 담장에는 수(壽), 복(福), 강(康), 녕(寧), 길(吉), 희(喜) 등의 문자들이 새겨져 있어 축원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란 점은 중악단에서 나오려고 할 때 돌로 깔린 길이 있다는 것을 본 것이었다.

 ‘아 돌로 길을 깔아놨구나…….앗!! 종묘!!’

중문에서 중악단 사이에 돌로 깔려 있는 길은 종묘에서 봤던 3갈래의 돌길과 그 목적이 같은, 신이 다니기 위한 신도(神道)인 것이다. 또 방금 전 설명 들었던 내용 중, 가운데 문은 일반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다는 것도 그제야 생각이 났다. 역시 문화유산은 작은 것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황혼기, 그 아름다움 - 신원사 5층 석탑

중악단의 감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한 귀퉁이에 서 있는 석탑을 보게 되었다.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신원사 5층 석탑이다. 하나, 둘, 셋, 넷……?? 5층 석탑이라고 했는데 5층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5층 부분이 사라졌다고 한다. 원래는 탑이 있던 이 곳이 신원사의 중심이었다고 하는데 그 중심에서 화려하게 서 있던 탑이 지금은 귀퉁이에서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부가 소실되고 색이 변하고 관심조차 줄어들었지만 이런 탑일수록 세월이 묻어나 좋아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외모는 추해지더라도 정신적으로 완숙해지는 것처럼, 탑도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되고 기울어지지만 우리에게 더 큰 깨달음을,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신원사 5층 석탑. 5층 부분이 사라져 지금은 4층 석탑처럼 보인다. 세월의 때가 잘 묻어난다.


 

마치며…

'계룡산에서 20년 동안 도를 닦고 하산한 ○○도사' 같은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계룡산은 예전부터 기맥이 세고 영적인 기운이 강한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수행하러 온다고 한다. 수행자들로, 관광객들로, 등산객들로 사시사철 붐비는 계룡산, 그래서 한적한 신원사가 더 돋보여 보인다. 신원사에서 자연과 함께 사색에 잠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면서, 계룡산의 영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중악단에서 유교․ 민간신앙․불교․궁궐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면을 보면서, 신원사 5층 석탑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껴보면서 늦가을의 추억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글쓴이 : bookworm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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