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_문화재청 당선작

[스크랩] "문화유산 사진 및 답사 후기 공모" -청풍문화재단을 다녀와서-

세네라미 2006. 12. 21. 18:23

"문화유산 사진 및 답사 후기 공모"

- 청풍 문화 재단을 다녀와서 - 문화재 보전에 대한 우리의 자세

 

 

지난 11월 11일부터 12일 1박 2일 동안 충북 제천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코스 중의 하나로 청풍 문화 재단을 들렸는데 문화재 보존과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답사후기에 응모하게 되었다.


먼저 청풍 문화재단이 어떻게 세워지게 됐는가부터 설명해야 할 거 같다. 정부의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에 의해서 충주댐이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댐이 건설됨으로써 수몰지역이 생기게 되었고, 이 수몰지역내에 있었던 문화유산을 한 곳에 이전 복원한 것이 바로 청풍 문화재단이 생기게 된 연유다.


청풍 문화재단의 터는 일단 충주호를 배경으로 주변의 산악과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자랑했다. 문화재로는 재단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를 맞이한 입구인 팔영루를 들 수 있다. 출입문의 천장에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안내하시는 분의 말에 따르면 고장의 수해를 막기 위하여 그려졌다고 하는데 안내문에는 “호랑이 꼬리가 청풍 밖으로 되어 있어 호랑이가 먹이를 먹고 청풍 밖으로 배설하여 청풍에는 큰 부자가 없다”는 우스갯 소리도 전해지고 있다.

 

 

11월 12일 청풍석조여래입상 보물 제546호


팔영루를 통과하면 멀리 망월산성이 보인다. 망월산성을 오르기까지 청풍석조여래입상, 한벽루, 석물군 등의 문화재를 만났다. 먼저 청풍석조여래입상은 청풍면 읍리 대광사 입구에 있던 거대 석불인데 신라말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불의 얼굴형은 사각형인데 양볼에 살이 쪄서(?)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을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세상의 온갖 갈등과 원한도 이 석불의 푸근한 표정 앞에서는 모두 풀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역시나 이러한 필자의 바람은 조상들도 생각하는 바가 그리 다르지 않았나보다. 구전에 의하면 “입상 앞에 있는 둥근돌을 본인의 나이만큼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으로 돌리며 기원을 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관람객들에게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소원성취는 아쉽게도 실패했는데 차라리 타지역에 석불상이 관람객의 ‘손때’만으로도 닳아서 훼손된 것을 감안한다면 관람객의 출입이 허용되어서 석불상의 후덕한 볼을 매만지다가 닳아서 언젠가는 야윈 볼이 되느니 이렇게 멀리서나마 그의 후덕한 인상을 동경하는 것이 앞으로도 이곳을 찾아올 관람객들을 위해서라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문화재는 한벽루다.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여 관아에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자기 고장의 행정구역이 승격되는 것에 대한 기쁨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듯하다. 여기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주춧돌과 누각 기단부의 처리양식이다. 바로 주춧돌에 인공적인 가공을 하지 않고 본래 주춧돌의 형태에 기단부의 목재를 맞춰서 깎은 것이다. 이는 강원도 삼척시의 죽서루에서도 비슷한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재단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양식을 엔타시스 공법이라고 지칭했지만 이 용어는 “고전건축에 사용된 원주(圓柱)의 약간 불룩한 곡선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리스 고대 건축의 곡선미를 설명하는데 유용하나 한벽루의 기단부 양식을 설명하는 데는 불충분하다고 생각된다.

 

 

11월 12일 한벽루(엔타시스공법) 보물 제528호


어쨌든 이 양식은 고장의 재정이 부족해서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조상들이 하나의 건축물을 지을 때도 자연과의 소통을 중요시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설사 재정이 부족했다는 이유가 사실이더라도 오늘날의 자본주의 소비만능주의사회에서 보이는 무절제한 자원소비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을 상기한다면 조상들로부터 좀 더 아껴 쓰고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슬기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망월산성을 올랐다. 삼국시대에 쌓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신선들이 산등성이에다가 살포시 돌을 올려놓은 듯 했다. 그러니까 많은 노동력을 쓰지 않고서도 최상의 산성을 만들기 위한 천연의 입지였다. 비록 높은 고도는 아니어서 쉬지 않고 오르니까 등에 살며시 땀이 배어나왔으나 과거에 이곳에서 전투가 있었을 때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서 피와 땀이 배어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정점에는 망월루라는 전망대가 있었는데 이 누각에서 신선들이 그저 신선놀음, 바둑이나 뒀을 것으로 밖에는 필자가 할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였다.


망월루 위에서 바라본 충주호와 단아하게 물든 단풍 옷으로 차려 입은 산과 조화된 주변경관을 보라! 가히 눈이 충혈될듯한 절경이었다. 이 광경을 본다면 필자의 상상력의 한계를 충분히 공감하리라. 더불어 싱그런 가을바람까지 도시의 보랏빛 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세상임을 일깨워주었다.


산성을 내려오면서는 석물군(石物群)을 잠시 들렸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 무덤인 지석묘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군수의 공덕일 기리는 공덕비와 제천향교에서 옮겨온 비석 등을 모아놓았는데 영국의 스톤헨지 석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이러한 돌들을 마주하면 어떤 영혼이 스며있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돌이 갖고 있는 물리적 속성으로 인한 묵직함 때문인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망월루에서 단풍절경을 보면서 느꼈던 흥분이 석물군을 지나면서 호수에 던지 돌멩이의 파문조차도 조심스러운 자세로 바뀌었다. 어쩌면 이러한 돌에 대한 조심스러움은 웬만한 풍화작용에도 쉽게 변형되지 않는 돌의 저항성과 대조적인 카멜레온처럼 ‘쉽게쉽게’ 변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피상성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으로 둘러보는 수몰역사관에서 이러한 인간의 ‘쉽게쉽게’ 하자는 사고에 대한 반성을 좀 더 깊게 고민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수몰역사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는 수몰지역에 대한 수몰전 역사와 문화재 생활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역사관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청풍문화재단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사유의 깊이와 폭에서는 가장 많은 생각할 거리를 필자에게 안겨주었다.


다목적댐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개발주의 시대의 막이 내리고 생태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요즘을 생각한다면 녹색댐 등을 대안으로 삼은다면 더 이상의 댐건설은 불필요하다. 댐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의 문화재가 청풍문화재단에 무사히 별 손상 없이 이전된 것은 다행스러우나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자세에 있어서 물체의 손상을 걱정하는 것과 더불어 좀 더 넓은 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본다.


연세대 건축학과 김성우 교수는 “한국의 건축은 서양에서와 같이 건물 하나하나의 독립적 가치가 추구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건축물이 독자적인 가치가 없었다거나 전혀 추구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건축물이 독자적인 자기추구 또는 자기실현의 입장보다 관계적 상황, 또는 공간적으로 더 큰 전체를 구성하는 유기적 원칙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규정되었을 때에, 우리는 그러한 내용을 무시하고 건물의 독립적인 가치만을 문화재적 가치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김성우,「도시 문화재 漢陽의 보존」,『녹색평론』, 1993년 1-2월호, 녹색평론사, 35쪽)면서 즉, 문화재 자체의 물적보전만이 보전이 아니라 문화재가 있었던 지역과의 연계, 장소성의 보전까지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김성우 교수는 서양 건축에 대해서 독립적 가치로 보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이집트에 있었던 오벨리스크가 프랑스 파리의 시내 한복판에 있는 (파리의 산성비로 인해서 훼손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오벨리스크와 같을 수 있을까. 또한 본래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에 있어야 할 헬레니즘 신전의 제단 유적이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건물 통째’로 전시되어 있는 것에서 장소의 변화로 인하여 관객이 받아들이는 작품의 가치도 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의 상실을 일컫는다. 관객은 단순히 작품미학이 아닌 상품미학으로서 이들 작품을 바라볼 뿐이다. 결국 서양이건 동양이든 간에 본래 작품이 있었던 장소성과의 연계는 매우 소중한 또 하나의 문화재임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즉, 수몰역사관에 전시된 모형지형 속에서만 위치한 원위치로 문화재들이 돌아가야만 비로소 본래의 문화재로서의 아우라를 내뿜는 것이다.

 

청풍문화재단을 답사하면서 아름답고 정감이 드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것도 중요한 답사의 추억이었지만 후손들에게는 앞으로 또 다른 곳에 수몰지역의 문화재를 한 곳에 모아놓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망월루의 엔타시스 공법에 깃든 생태적 사고 또한 문화재 보전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은 고민을 제공해줬다. 필자의 이번 답사기를 읽고서 좀 더 많은 분들이 이러한 고민을 함께했으면 바람이다.  

 

 

 

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글쓴이 : 진태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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