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_문화재청 당선작

[스크랩] 문화재에 담겨 있는 어머니의 사랑

세네라미 2006. 12. 21. 18:02
 

   고향은 좋은 곳이다. 말만 떠올려도 가슴이 설레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쪽 하늘만 바라보아도 위안을 받을 수 있고 안온함을 느낄 수 있다. 고향은 뿌리이고 바탕이기 때문이다. 고향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숨쉬는 것부터 한결 부드러워진다.


  일상에 밀리며 살다보면 힘들고 지친다. 그럴 때마다 그리워지는 것은 바로 고향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이라도 버스에 올라타고 싶어진다. 그러나 현실이 가로 막는다. 앞서는 마음을 매몰차게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고향을 찾기가 결코 쉽지가 않다. 어렵게 시간을 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고향에 발을 내려놓게 되면 낯설다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인걸은 간 곳 없고 잡초만 무성하다고 하였던가. 함께 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낯익은 얼굴은 찾기가 어렵다.


  물론 고향의 하늘에는 유년 시절의 꿈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으니, 그리운 마음을 달래주기는 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기억 속에 살아 있으니, 마음이 포근해지기는 한다. 그렇지만 왠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곳이 있다. 바로 고향에 있는 문화재들이다. 세월이 흘러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이 바로 문화재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문화재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곳에는 유년 시절의 꿈과 열정 그리고 희망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세월의 예리한 칼날에도 조금도 상하지 않고 온전한 채로 남아 있다. 그 곳에서 뛰고 달리며 즐겁게 보냈던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향을 찾게 되면 문화재부터 돌아보는 것이 몸에 배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고향에서 낯선 느낌을 지워버리기 위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충족시켜주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멀어지고 있는 가을이 마음을 처연하게 하였다. 며칠 전부터 아내는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 다른 일도 아니고 친구 자식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이니, 속상할 일이 아님에도 화가 치민다. 분명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모를 것이 마음이다.


  홀로 있는 일요일이란 생각에 기회로 삼고 고향의 문화재를 답사해보려고 계획을 세웠다. 가을 여행으로서는 아주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는 스트레스로 인해 침체되어 있는 마음을 위로해주는 좋은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가을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가을 햇살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달리는 차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따사로움 속에는 고향의 향기가 배어 있는 듯 하였다.


  사적 145 호 모양성.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바로 모양성이다. 보리 모 볕 양자를 쓴다. 전북 고창은 삼한 시대에 모양부리현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비산비야의 지방이다. 방장산을 중심으로 노령산맥의 마지막 힘이 이곳에 펼쳐져서 산이 있지만, 방장산에서 발원하여 선운사 앞 바다로 흘러나가는 인천강이 있어 평야가 있다.

 

 


  산이 있고 평야가 있고 바다가 있으니, 산물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살기 좋은 고장이다. 얼마나 살기가 좋은 곳이면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겠는가. 유네스코 세게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고인돌 군이 고창읍과 아산면 사이에 남아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고장의 이름에서 알 수 있던 이곳은 보리가 잘 자라는 곳이었다. 그래서 고창고등학교의 상징도 바로 보리다.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단종 때 세워진 모양성은 그 둘레가 1780m로 유년시절의 꿈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성 안에는 동헌이 있고 왕대 숲이 있어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신나는 놀이를 하던 곳이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읍내의 전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노동 저수지의 푸른 물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고 야망을 불태우던 곳이었다.


  모양성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관광지로 잘 조성되어 있다. 특히 성 밟기 전설은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윤달에 돌을 이고 한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났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를 돌면 극락왕생한다고 한다. 그렇게 모아진 돌은 적을 물리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고인돌 군을 지나 아산면에 있는 선운사로 향하였다. 사람들이 많기는 하였지만 걱정과는 달리 문화재를 답사하는 데에는 적당하였다. 선운사는 유서 깊은 절이다. 신라 진흥왕 때 검단 선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하니, 고찰이다.


  고창의 문화재는 대부분이 바로 선운사에 있다. 고창에는 국보는 없고 보물급 문화재만 있다. 대웅전, 지장보살상, 마애석불 등이 있고 그 외에도 지방 문화재들이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불경을 찍어낸 목판본들도 다수 있어서 학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선운사에는 천연기념물로 많이 있는 곳이다. 동백나무 군락이 북방 한계선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장사송, 송악 등 많은 천연기념물을 소유하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성송면에 있는 이팝나무와 함께 이 고장의 자랑이기도 하다.

 

 


  가을이 어디에 있는가 하였더니, 모두 선운사에 모여 있었다. 원래 내장사보다 조금 늦게 단풍이 든다. 내장사의 단풍을 보고 난 뒤 2 주 쯤 뒤에 이곳의 단풍은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선운사의 고운 단풍을 보기 위하여 시기를 맞추려고 노력해보지만, 번번이 놓치기 일쑤였다.


  “야 ! 곱다.”

  입에서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동백과 꽃무릇으로도 유명한 선운사다. 계절마다 독특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 봄에는 동백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고 여름에는 맑은 계곡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겨울에는 설경이 그만이고 가을에는 바로 단풍이다.


  별천지에 들어선 느낌이다. 하늘도 빨갛고 땅도 온통 붉은 색이다. 온 세상이 고운 단풍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 곳에 들어선 사람들마저도 고운 단풍에 물이 들어버리니,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선운사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선운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 24 교구 본사로서 전라도 지방의 불교의 중심지다. 그만큼 역사가 깊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전파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선운사 승가대학에서 많은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화엄 세상에서 사천왕문에 들어서니, 사천왕상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니, 만세루가 다가온다. 만세루는 공부하는 강당이다. 그 규모가 어찌나 큰지 선운사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만세루너머 도솔산의 가을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운판, 목어가 함께 있는 종루를 돌아서니 보물 290호인 대웅전이 가슴에 들어온다. 그 장엄함에 저절로 마음이 숙여진다. 중학교 시절 이 곳으로 소풍을 오게 되면서부터 이곳을 찾게 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하다.


  대웅전의 장중함과 멋스러움에 취해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어머니의 사랑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몸의 세포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미소를 바라보며 일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벗어낸다.

 

 

 


  전라북도 지방문화재인 6 층 석탑에 낀 이끼를 바라보면서 문화재의 향기를 실감하게 된다. 문화재의 향기는 이 고장을 사랑하며 이곳에서 살았고,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의 마음에 그대로 전해질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진한 감동을 간직하게 되면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비록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에는 영원히 살아 있다.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이곳에서 변하지 않고 지켜갈 것이란 생각이 든든하게 만든다.


  문화재의 향기에 추하고 고운 단풍에 젖어 있으니, 시간 가는 것을 잊어버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부도전으로 향하였다. 도솔함과 마애석불도 꼭 찾는 곳이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용문굴을 지나 서해의 일출을 바라보게 되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부도전에는 추사 선생님이 백파 율사를 위하여 쓴 비문이 남아 있다. 추산 선생과 백파 율사의 우정을 되새김으로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곳이어서 빼놓지 않고 찾는다. 선운사를 나서는 마음에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추억에 남을 문화재 답사 여향이었다.<春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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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유산 답사기
글쓴이 : 춘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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